170817 <비너스 인 퍼>

2017. 8. 19. 20:11 from 기타 극

170817 <비너스 인 퍼> 8pm

캐스트: 이경미 지현준




1. 생각을 많이 하고 다시 마주하니까 더 좋아진 극. 너무너무너무 즐거웠다. 극이 끝나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얘기하는 게 이렇게 즐겁다는 걸 새삼 느낀다. 

자첫 때랑 다른 페어였는데 느낌이 확 다른 것도 재밌었음. 둘 다 좋아!



2. 개인적으로 오늘 자둘하기 전에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갔다. 현준배우 라디오나 희곡 <바카이> 그런 것들. 그래서 그런지 진짜 느껴지는 게 다르더라. 알수록 짜릿하다. 

특히 "바카이랑 비슷하지 않아요?"하는 대사가 왜 굳이 들어가야 했는지 알겠더라. 마지막에 펜테우스가 여장을 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격하되었던 것처럼 홀린 듯이 자기를 때려달라고 애원하는 토마스의 모습. 

벤다의 마지막 대사에서 나오는 "주님"도 흔히 얘기하는, 그리고 토마스가 얘기하는 기독교적 God이 아니라 바쿠스였음을ㅋㅋㅋ 

좀 이야기가 새지만 경미벤다가 "만세 바카이." 대사 할 때 정말 바카이 그 자체 같았다. 광기가 그대로 눈에 드러나는데 너무 좋았음ㅠㅠ 

아무튼 그런 부분 부분의 대사들을 캐치할 수 있게 돼서 더 재밌었다.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해...


극 전체로 봐도 더 닿는 부분이 많았음. 권력이 넘어가는 순간 같은 거. 

"모순"과 "모호"의 의미에 대해서 사실 아직까지 나만의 정의를 내리진 못하겠지만 확실한 건 토마스가 원하는 여성은 모순됐다는 거다. 젊은 여자이면서 죽어가는 여자, 자기 말에 군말 없이 따르면서 머리에 든 건 많은 여자. 

사실 "완벽한 여자."라는 토마스의 그 대사 하나가 토마스의 전부를 설명하는 거 같음ㅋㅋㅋ 토마스가 저 대사 하자마자 연극 <M. 버터플라이>의 완벽한 여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남자들만이 안다고 하는 대사가 딱 생각났다. 


이 극의 좋은 점은 이게 "성차별"이라고 직접적인 단어를 언급하며 얘기한다는 거. 이게 성차별이라고 은유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대놓고 얘기하며 짚어주는 게 너무 좋다. 

특히 이 극을 볼 때 언제나 초반의 "멍청한 여자"를 연기하는 벤다를 보고 조롱하는 투로 웃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물론 웃으라고 만든 장면들도 있겠지만 맥락이 다르니까. 

그래서 그런 식으로, 어쩌면 좀 폭력적인 장면까지 동원해서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굉장히 좋았음. 나부터도 보며 많이 생각했고ㅋㅋㅋ


하 대사마다 '벤다'를 비난하고 있다는 대사 너무 좋아...< 그 말을 들은 토마스가 '이건 심오한 예술이고 이걸 그렇게 받아들이는 네가 멍청하고 예민한 거다. 이래서 여자들이란!'하는 것도 너무 완벽했곸ㅋㅋㅋ 

너무 완벽한 여성혐오자들의 논리 아닌갘ㅋㅋㅋ 토마스 같은 작가/연출 분들이 이 극을 꼭 보셔야 하는데... 

같은 맥락으로 토마스가 자기는 원작에 있던 대사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할 때 벤다가 어디서 가져왔든 상관없다고 하는 것도 너무 좋다. 흔하게 그런 변명들을 많이 보니까. 

어떤 의도로 가져왔든, 어디서 가져왔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좋은 의도로 ‘세계 명작’이라 불리는 것에서 가져왔다는 것이 대체 어떻게 변명이 된다는 거지? 

중요한 건 명백히 여성혐오적인 표현과 장면과 맥락으로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대로 가져올 거면 각색은 왜 하며 왜 지금 시점에 공연을 하는 건지.



3. 페어별로 느낌이 다르단 얘긴 많이 들었지만 진짜 다르더라. 진의벤다 쪽은 정말 클래식한 천팔백뭐시기의 느낌이 좀 더 셌고 경미벤다 쪽은 현대적인 느낌. 그래서인지 경미벤다 쪽이 직접적인 스킨십도 많고 애드립도 많이 있었다. 성적인 텐션도 더 강했던 거 같고...? 

굳이 따지자면 진의벤다 쪽이 좀 더 내 취향이지만 경미벤다도 너무 좋았음. 처음에는 좀 산만한 느낌이었는데 갈수록 그 목소리랑 에너지가 굉장하더라. 벤다와 '벤다'가 많이 차이 나다가 점점 그 차이가 줄어드는 것도 좋고. 그걸 토마스가 인지 못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인 듯<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강렬한 눈빛은 아마 계속 잊지 못할 것이다. 


현준토마스는 연출 같았던 도엽토마스랑 살짝 다르게 작가 같았음. 덜 꼬장꼬장한 느낌이고?ㅋㅋㅋ 스테이시한테도 존대해서 첫 장면부터 놀랐네. 물론 토마스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오히려 그런 소위 말하는 ‘개념남’같은 사람이니까 더 좋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여성한테 잘 대하는 것 같지만, 본인은 여성을 성적으로만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성차별을 하고 있으며 그걸 짚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엽토마스는 끝에 현실로 돌아와서 버둥대는 느낌이라면 현준토마스는 현실과 극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본인도 무너져 내린 느낌. 그래서 현준토마스가 하는 여기가 어딘지 난 잘 모르겠다고 하는 대사가 그렇게 좋더라. 무릎 꿇고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좋았고ㅋㅋㅋ 

위에 있는 게 당연해 보이는 경미벤다랑 만나니까 정말 찰떡같음. 두 페어가 각자 다른 매력이 있으니까 어느 페어든 행복하다...



4. 요즘 <모범생들>만 계속 보다가 이 극을 보니까 더 기분이 이상한 것 같다. 

범생은 남자들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쩌구저쩌구였는데 비인퍼는 그 사회에서 등장조차 하지 못한 여성이 권력을 뒤집는 얘기니까. 성형을 했니 안했니 평가 받으며 외모로, 또는 집안으로 이름이나마 등장할 찬스를 잡던 그 인물들이! 

그 차이가 얼마나 재밌는지. 그리고 재밌기 이전에 얼마나 비참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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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백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