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18 <레드 북> 8pm
1. 너무 좋았다. 진짜 근래 관극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 그냥 너무 짜릿하고 너무 기분이 좋고 소름 돋고 이 맛에 관극하지 싶더라. 물론 이 극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는 없고 아쉬운 소리가 좀 나오지만 그래도. 좋았다.
2. 일단 오늘 유리아 배우를 처음 봤는데 진짜 좋았다. 지붕 날리시는 줄;;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연기도 너무 좋고ㅠㅠ 그냥 보는 내내 두 손 모으고 찬양하고 싶었다ㅠㅠ 이 배우가 만드는 안나도 보는 내내 마냥 예뻤고.
그리고 이상하게 민진 배우한테 살짝 치였는데 이건 예상된 덕통이었던 거 같아서 좀 허탈하고<
국희 배우를 데트에서 처음 보고 오늘 본 건데 노래도 잘하시더라. 최애 헬가였어서 연기 잘 하시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참 전체적으로 배우들 다 좋았음. 두 빌라도들도 정말 좋고ㅋㅋㅋ
3. 넘버들 좋더라. 가사도 정말 맘에 들고. 하얀 세상에 나라는 검은 자국을 남겨였나 그 가사 듣고 소오름. 계속 생각나ㅠㅠ 본공 빨리 와서 오슷 내주세요 제발ㅠㅠ
4. 한국 창작 '대극장' 뮤지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꿈을 찾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다니. 정말 난 그것만으로도 이 극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이 꽤 흥행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여성 원탑극이 안 팔릴 거라는 헛소리를 하려거든 이 극을 보라고 하면 되겠지 이제ㅠㅠ 본공 빨리 왔으면 정말 좋겠다.
5. 이제 좋은 말 다 했으니까 모진 말 좀 해도 되겠니^^... 사실 극이 그렇게 세련되진 못하잖아. 동화의 형식을 빌려와도 충분히 어른들을 위한 걸로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잘 만들 방법이 있을 건데 이 극은 마냥 유치하게 느껴진다. 캐릭터들도 너무 평면적이고.
솔직히 나는 캐릭터들에 대해 좀 불만이 많은 편인데 브라운을 포함한 신사 삼총사가 이 극의 마스코트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으로 나온다는 게 제일 싫다.
이 극의 메시지는 다분히 페미니즘적이고 구시대적 관습을 계속 비난하고 있는데 그런 가치관의 대표격으로 앞부분에서 계속 희화화됐던 신사들이 귀여운 캐릭터들로 그려지다가 끝내는 사건을 해결하는 주요 캐릭터들이 된다...?ㅋㅋㅋ 심지어 그 쌍둥이 신사들은 가치관이 변했다는 일말의 단서조차 없는데 그런 애들이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게 매우매우 맘에 안 드네요.
거기다 뭔가 포인트 안무를 줄 캐릭터들이 있다면 로렐라이 동산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때문에 신사 삼총사요...
브라운 단독으로도 나는... 잘 모르겠어... 귀여운 거 좋아. 근데 그 귀여운 건 안나로 인해 변해가면서 귀여우면 안 될까...? 주인공들이 매력 없으면 이입하기 힘들지 그래. 이해는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브라운이 변한다는 게 잘 와 닿지도 않고 변했는지도 모르겠고...
생각하는 게 구릴 때는 그냥 그걸 구리다고 확실하게 짚어주고 바로 넘어가줬으면 좋겠다. 굳이 포장하지 말고.
아 사실ㅋㅋㅋ 브라운이 지금까지 나왔던 여자 캐릭터들의 미러링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좀 했음ㅋㅋㅋ 이게 의도된 거라면 좀 좋아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뭐라 그러지 소위 말하는 금발 글래머 여성의 백치미...? 근데 만약 그런 걸 의도했다면 그 의도가 드러나게 조금 더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 듯. 지금으로서는 글쎄...ㅎ
안나의 경우는 난 얘가 잘 성장한다는 걸 느끼지 못하겠다. 그냥 안나는 처음부터 완성되어있는 캐릭터 같아ㅋㅋㅋ 작가로 성장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많이 없는 거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그래서 안나가 브라운과 동료들을 뒤로 하면서까지 글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할 때 조금 이해가 안 되더라.
안나가 브라운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도. 왜 사랑하게 됐는지 곱씹으면서 대략 이해는 했다. 괴랄한 책에서 본 것이든 뭐든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해보라고 얘기해준 사람이 안나에겐 브라운이 처음이었을 거고 그때 느낀 감정들이 사랑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근데 이걸 실황으로 처음 봤을 때는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맥락을 모르겠다고 생각했음. 브라운이 안나에게 사랑에 빠진 건 계속 신경 쓰인다고 언급을 했으니 넘어간다고 쳐도.
6. 극이 너무 길다. 보통 대극장 공연 런타임이 75분-60분인데 이건 75분-75분. 그동안 늘어지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좀 지루한 감이 있다. 내 생각엔 남자들 얘기가 너무 많은 거 같아^^ㅋㅋㅋ 특히 딕 존슨 같은 경우 마지막에 어떻게 됐는지 굳이 등장시켜서 보여주고 곡도 많고 궤시러ㅓㅓㅓ 신사 삼총사 세 명도ㅠㅠ 로렐라이 동산 쪽 얘기도 은근 쳐지는데 이 부분은 쳐내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으로 굳이 말하지 않겠다,,,< 좀 쳐낼 부분을 쳐내고 본공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빨리요.
7. 마지막 결말이 결국 (멍청한) 남주가 해결한다는 점이 맘에 안 든다. 예를 들자면 레드북 독자들이 탄원서를 제출할 수도 있는 거잖아? 굳이 남주가 여주를 구출하는 이유가 뭐지요...
8. 레드북이 단순히 야한 소설들만 있는 건 아닐 건데 너무 그 부분에 치중한 거 같아서 그것도 좀 별로.
로렐라이 언덕의 인물들 중 하나는 남편을 죽이는 소설을 쓴다 했는데 그렇다면 이거 장르는 스릴러 내지는 호러나 추리 소설일 거잖아. 그 캐릭터를 그대로 넣어둔 상태로 야한 소설들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그 캐릭터는 뭐가 되는 거죠...?ㅋㅋㅋ
9. 로렐라이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남자들은 로렐라이에게 추파를 던졌고 여자들은 돌을 던졌다는 거 참 전형적인 프레임이네요.
거기서 때리고 그러는 거 좋아하냐고 물어보면서 SM에 대한 것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데 상호 동의하에 즐기는 거면 문제될 거 없는 취향이지 않을까...
10. 아 맞아 나 이거 진짜 좋았는데 여성 조연들이 다양한 체형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희화화하지 않는 거! 그거 정말 좋았어ㅠㅠ 내가 이런 걸로도 좋아서 붕붕거리는 쉬운 새럼이다 그지 같은 연뮤계,,,^^
11. 얘기가 나와서 또 하는 말이지만 자긴 사랑 없이 나 혼자만으로도 완벽하다고 외치는 여주 한국 창뮤에서 본 적 있냐고... 여주를 바꾸려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주 본 적 있냐고... 나 진짜 울었다고...<
당장 이 작가의 전작인 여보셔만 봐도 여성 캐릭터들 다 전형적인 대상화된 애들이라고... 지인들 말을 빌리자면 한국 근현대 소설 속 여자 캐릭터들 총집합ㅋㅋㅋ 그런 극을 썼던 사람이 공부해서 레드북 같은 극을 쓴 게 좋긴 하지만.
13. 아 근데 결국 여주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한 사람도 헨리 아저씨잖아? 하하 거참.
14. 성별을 떠나서 내가 내 자신으로 사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게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자고. 그 메시지가 명확한 게 좋다. 빨리 다듬어서 본공 와주세요.
이 후기를 한 줄 요약하면 그러하다. 본공 하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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